오기활
http://www.zoglo.net/blog/wujihuo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포럼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

딸아이와 우리글 공부
2022년 05월 31일 03시 51분  조회:2499  추천:0  작성자: 오기활
딸애가 태여나서 유치원에 가기전까지 나는 우리말로 아이와 대화하면서 우리말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 한어보다 우리말이고, 우리말을 알면 고향의 친척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수 있고 아이의 민족정체성 확립에도 도움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재잘재잘 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조선족 엄마로서 언제나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보통 대도시에서 거주하는 조선족 가정에서는 어릴때부터 아이한테 당시 백수를 외우게 하고 한어로 대화하는 가정들이 많다. 어릴때부터 미리 한어를 가르쳐야 학교에 가서 언어소통에 지장이 없이 어휘력이나 문장 구사능력 또는 사자성어를 잘 익힐 수 있다는 리유에서였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리가 우리의 언어와 문자를 잃어버리면 우리 문화와 민족성을 잃어 버리게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특히 우리 조선족은 두가지 언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축복받은 민족인데 말이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전해줘야 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한테 달렸다.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우리말과 우리글, 그리고 우리문화를 대대손손 후세까지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유치원에 붙으면서 하루종일 한족 선생님, 한족 애들과 한어로 대화하니 우리말을 점점 잊기 시작하였고 우리말로 묻는 말에 우리말로 대답하기조차도 어려워했다. 그렇게 소학교 2학년이 되니 우리말 말문이 막혀버리면서 아예 벙어리가 되였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로심초사하면서 우리말을 가르쳤는데 …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나면서 나는 좀처럼 우리말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연변의 자그마한 변방도시 도문의 평범한 조선족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우리말을 배우면서 자랐다. 그때는 장국에 배추김치를 찢어서 먹으면서도 구수한 우리말 “반찬”이 있어서 비록가난했지만 항상 행복했다.
특히 우리의 고유한 전통을 가진 구수하고 감칠맛이 나던 우리말들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뜨끈뜨끈한 가매목에 날래 앉아서 손가락 과재랑 옥시티개랑 해자블을 까면서 나눠 먹깁소 ”
 “이매 피두 채 안마른 선선아 대여섯이 구새통옆에서 담배를 피우메 휘파람 불면서 창개를 하메 놀잼두?”
 “공부를 써거지게 답새긴다”
 “저 남자애 입은 우티 와늘 죽임다”…
이렇게 사투리까지 섞인 우리말은 어릴때 어머니가 끓여준 슝늉처럼 구수했다. 집에 전화기도 없었던 그 시절, 나는 공중전화박스앞에 가서 청년생활, 연변녀성 등 우리말 간행물들을 사서 읽은 후 친구들한테도 빌려주기도 했었다.
그후 나는 량부모를 잃고 어린 나이에 일찍 대도시에 나와서 부평초처럼 살았다. 고향 을 떠나서 상해 포동에 자리잡고 살면서 처음 길에서 조선족을 만나서 우리말을 할때 그 반가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처럼 우리말에 대한 갈증으로 목이 말랐던 것이다. 처음 만난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고 나는 수없이 그동안 못했던 우리말로 그녀한테 내 이야기를 늘어놓군 하였다. 17년전 포동에는 조선족이 그리 많지 않을 때였다.
어려서부터 배운 우리말이 그리워서 처음으로 조선족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에 가서 면접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면접보러 왔습니다.”
“ 방갑소 ~ 연변에서 왔구나. 나도 연변사람이요.”
나의 이력서를 훑어보면서 사장님이 정겨운 연변말로 반갑게 맞아주니 가슴에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했다.
면접에 무사히 통과된 나는 입사후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마음껏 우리말을 하면서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좋은 상사와 동료들을 만난 것이 나의 복이라면서. 외지에서 한족들을 자주 만나다보니 그들은 내 서툰 한어 말투를 듣고 어디 사람인가 묻군 했다. 그때마다 나는 연변에서 온 조선족이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조선족은 아리랑 노래를 부르고 이쁘고 깨끗하고 특히 조선족 여성은 온화하고 현처량모형이 많습니다 ”
내가 만난 한족들은 조선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높히 평가하면서 가끔 조선족여성을 흠모하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왜 그리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아이가 소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더 늦어지기전에 우리말과 우리글을 배워야 했다. 어릴때 배우지 않으면 커서는 더 배우기 어렵다. 우리말을 배워주는 학교는 없을가? 내가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구세주같은 조선족 주말학교가 나타났다.
2010년 10월 16일에 설립한 상해조선족주말학교는 학생들에게 우리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대부분이 한국인이고 선생님들중 서울대석사학위를 받은 조선족선생님들이 여러명이나 계실 정도로 교수진은 탄탄한 실력을 갖추신 분들이었다.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은 자신의 모든 시간과 정력과 청춘을 바쳐서 타지에서도 우리 민족의 언어를 지켜가고 있었고 한국어 중국어 영어를 모두 구사할수 있는 조선족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고 있었다. 이렇게 같은 상해에서 우리말을 가르치겠다는데 굳이 싫다면서 한족들처럼 한국에 류학을 보내어 몇십만이라는 비싼 학비를 팔 필요가 있을가?
박형군교장선생님은 “애들이 소학교 6학년만 졸업하면 우리글을 읽고 쓰고 하는데 전혀 문제 없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학교만 졸업하면 어디나가서도 자랑스러운 조선족으로 거듭나갈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우리말은 마치 교장선생님의 몸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와 같았다. 
딸아이는 매주 토요일마다 늦잠을 자지 못하고 주말학교를 다니면서 하루에 2시간씩 공부를 하였다. 타지에서 아이들을 우리말 공부를 시키려고 온 학부형들이 의외로 많았다. 학교는 민항구 룽바이2 촌의 교실을 빌려서 수업을 했는데 포동, 칭푸, 송강, 곤산에서 온 학생도 있었다. 운전해서 왕복 3시간반이상의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아이를 조선족 주말학교에 보내는 부모님들의 열정에 나는 탄복을 했다. 앞으로 조선족의 미래가 보이는 같아서 마냥 설레이기도 했다.
딸애가 다니는 반급에는 학생이 20여명, 20여개 반급이 있었다. 나는 아이를 주말학교에 보내놓고 그제야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이 바쁘다는 핑게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는 시간집중은 잘 하는지, 공부는 잘 하는지, 숙제는 하는지를 한번도 확인한적이 없었고 기계적으로 학교에 보내기만 하였다. 반년이 지난 어느날 나는 아이더러 교과서 과문을 읽어보라고 하였다. 그런데 아이는 한줄도 읽어 내려가지 못하는 것이였다. 반학기동안 배운 공부가 나미아미타불이 되였다. 나는 할수없이 아이를 아래 학년에 내려앉히고 다시 배우게 하였다. 한달 후 다시 아이가 공부를 하는 것을 확인해 보았는데 일정한 시간만 지나면 한줄도 읽어내려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알고보니 딸아이는 일주일에 2시간만 공부하다 보니까 그동안 배운 내용을 다 잊었던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내여준 숙제를 전혀 하지 않고 집에서 복습도 시켜주지 않으니 다음 주 주말학교에 갈 때는 지난 주에 배운 과목을 새까맣게 잊었다. 우리가 자랄 때는 하루종일 학교에서 우리말을 했고 집에서도 동네에서나 티비에서 우리말을 접할 수 있으니 학교에서 배운 말과 글들은 잊어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타지에서 자란 아이들한테는 주변환경이 허락하지 않아 심지어 우리말을 영어를 배우기보다 더 어려워했다.
한 학기가 지나니 같이 다니던 애들이 차츰 보이지 않았고 반급의 학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길에서 같은 반급 다니던 학생 학부형을 만났다. 
“애가 주말학교에 안나오던데...웬일이에요?”
“우리말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어요? 요즘 경기가 안좋아서 상해에 한국회사가 절반이상 철수하고 문을 닫았어요. 이젠 조선족들이 한국기업취직이 어려워졌어요. 우리애들 세대에 한국회사에서 어디 취직이나 하겠어요?”
“취직을 위해서 우리말을 배우는게 아니잖아요? 조선족으로 태여났으면 우리말도 할줄 알고 우리 글도 알아야 조선족이라고 할수 있지요. 신분증에 조선족이라서 번듯하게 써있어서 조선족이라고 할수 없어요. 우리 애들이 조선말을 할줄 모르면 앞으로 우리민족이 없어져요.”
그는 내 말을 귀등으로 들었는지 웃으면서 “그 시간에 영어학원을 보내는게 더 나아요.”라고 했다. 자기 민족언어도 모르면서 다른 나라 언어를 기를 쓰고 배우는게 나로서는 조금은 리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마다 아이를 양육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기에 옆에서 뭐라고 할수 없는 노릇이였다.
그 즈음 같은 반 학부형을 여러명을 만났는데 너무 멀어서, 애가 싫어해서, 영어학원때문에, 애가 재미없어 해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서...등 여러가지 리유때문에 그만 두었다고 한다. 우리말을 배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견지를 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았다.
우리 후대에서 언어가 사라지면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의 민족의 뿌리는, 우리의 문화는...나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이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아이를 또 다시 아래 학년에 내려앉힐 수 없어서 나는 모든 과외를 다 끊고 편안하게 우리말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나섰다. 주말학교에서 배운 숙제를 무조건 시키고 검사를 했고 낮에 배운 과문을 세번씩 읽게 하였고 단어를 5번씩 쓰게 하였다. 그랬더니 딸아이는 과문을 세번을 읽고나서 목이 아프다고 하고 글을 쓰라면 손가락이 끊어질 것 같다면서 트집을 잡기 시작하였다. 학교 숙제가 많아서 부담되는데 왜 주말학교 공부까지 해야 되냐면서 내게 빡빡 대들었다. 우리말, 우리말이 도대체 머냐고? 하면서 …
우리말이 기억하기 힘들다고, 하기 싫어서 포기하겠다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내가 아이를 너무 힘들게 닥달한거 같아 미안해지기도 하였다. 교장선생님 말대로 딱 6년만 견지하자,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언젠가는  엄마가 제일 잘한 것이 내가 엄마한테서 언어를 물려받은 것이라고, 그것은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값진 재산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였다.
나는 아이에게 매주 토요일 저녁은 모음과 자음, 받침을 읽고 쓰게 하였다.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을 마치기도전에 깨칠 것이요,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수 있다는 훈민정음은 우리글을 간단히 익힐 수 있게끔 만들어진 게 아니었던가.
꽃밭 [ 꼳빧 ] , 시작해요 [ 시자캐요 ] , 특별활동 [ 특뼐활똥 ] , 옷이야 [ 오시야 ] , 잃어버리지 [ 이러버리지 ] , 있겠어 [ 읻께써 ] , 똑같은것 같아요 [ 또가튼거 가타요 ]…이처럼 읽을 때와 쓸 때 다른 글을 받아쓰기 하면 아이는 굉장히 어려워하였다. 과도한 훈련보다는 딸아이와 같은 눈높이에 맞추어 천천히 꾸준히 견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았다. [ 소곤소곤  ] [ 수군수군 ] [ 방글방글 ] [ 뾰족뾰족 ] [ 방실방실 ] [ 조곤조곤 ] [ 울긋불긋 ] [ 아장아장 ]... 아 , 얼마나 표현력이 풍부한 우리말인가. [ 선생님과 문화를 배워요 ] 는 매 과목마다 제일 마지막 부분에 있었고 비교적 길다보니 매번 내가 읽어주고 낱말 뜻풀이를 구체적으로 해주면서 아이와 다시 언어 연습을 하는 기쁨과 흥취를 느꼈다. 그처럼 나는 지칠줄 몰랐다.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우리는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수업을 하였다. 학교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는 온라인 반급 목표는 100개이고 수업의 퀄리티를 보장하기 위하여 반급별 학생수는10명으로 제한했다. 학교는 전국각지 조선족어린이들의 온라인 수업방식으로 우리말 우리글을 배울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마련해주면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인터넷만 된다면 북경,강소성, 절강성,심천 등 전국 각지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어린이들은 수업에 참가할 수 있었다.
온라인 수업의 시간은 1시간이였는데 의외로 집중력이 엄청 높았다. 딱 한달 했는데 한주 ( 1회 모두 4시간) 딸 아이한테서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딸아이는 교과서 과문을 뜯어서 읽기 시작하더니 줄줄 내리읽었다.
“시험 보는 날 미역국을 먹으면 안돼요”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미역이 미끄러워 시험에서 떨어진다”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이였다. 글을 먼저 배우니까 말뜻을 이해하고 있었다. 차츰 아이는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한어로, 영어선생님과 영어로, 집에 와서는 우리말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다양하고 풍부하고 이쁜 언어를 더 잘 배우는 방법은 없을가? 부모랑 친구랑 더 재미있게 공감하면서 대화하는 방법은 없을가?
아이의 우리말 실력을 조금 더 제고하기 위하여 나는 고민끝에 지난해부터 아이와 함께 세계를 강타한 한국드라마 ”오징어 게임”보기를 시작하다가 “기황후” “ 태양의 후예”“사랑의 불시착” 같은 중국어 자막이 나오는 드라마를 같이 감상하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인물에 대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눈으로, 입으로, 귀로, 머리로, 마음으로 편안하게 즐겁게 한국어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드라마를 감상하면서 나는 아이의 순수하고 맑은 내면세계에서 잔잔한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이정혁동지 세리동무를 좋아하재? 이정혁동지 우추부레 하구나. 와 ~ 여자한데 뽀뽀를 하면서 ”“행복 하시라요”“알갓소” 아이는 가담가담 드라마속 북한 말투를 배워서 나를 웃게 하였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이는 나도 부르지 못하는 한국드라마 주제곡을 외울 정도로 한국음악에 흠뻑 도취되였다. 아이는 한국노래가 중국노래보다 곡이 더 듣기 좋다면서 한국과 중국노래의 구별점을 내게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어느날 아이는 한국노래를 부르다가 가사를 보면서 “엄마, 나 여기 나오는 한국글자를 다 읽을수 있어요. 너무 간단해요.” 라고 방방 뛰면서 신이나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덕분이에요. 엄마는 주말학교 선생님해도 되겠어요.”라고 하면서 나를 잔뜩 칭찬해주기도 한다.
아이는 아이돌중에서 BLACKPINK 를 제일 열광했다. 2016년에 데뷔한 그룹인데 외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아이는 그들의 생일이며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무릇 BLACKPINK 가 부른 노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밥상에 마주 앉아서 부르기도 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흥얼거리는 그야말로 못말리는 팬이였다. 그렇게 딸아이는 12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언젠가 한국어 숙제를 하다가 아이는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는 내가 왜 우리말을 배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조선족이라서, 엄마 딸이라서 무조건 배워야 된다고, 그외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
“있지 , 있구 말구 ~ ! 엄마는 지영이가 엄마 배속에 있을 때 일기를 썼어. 태여나서 첫돐 쇠기까지… 너의 성장이야기가 적혀있어.”
 “그럼 엄마가 읽어주면 되겠네요.”
 “니가 우리글을 잘 배워서 너 절로 읽어. 그건 너의 이야기이니깐.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그리고 엄마는 글도 하나 쓰고 싶어. 지영이가 엄마 첫번째 독자가 되여주렴.”
 “우리글을 견지해서 잘 배우고 엄마가 쓴 일기도 읽고 엄마 글의 첫 독자가 되여줄게요.”
아이는 나와 손가락깍지를 걸고 대답을 했다.
우리글을 더 잘 배우려는 동력이 생기자 아이는 우리말 공부에 애착하고 스스로 공부했고 나는 우리말로 된 공식계정에 올라온 영상시를 아이와 같이 들으면서 아이에게 우리말로 지속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해주었다.
 딸애는 내 생일날에 나한테 생일 카드 한장과 핸드폰 위챗으로 빨간 봉투를 보내주었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저를 낳아주고 이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로나를 잘 이겨내세요. 엄마, 사랑합니다.”
카드에 우리글로 손글씨로 축하의 메세지를 보내준 딸아이가 너무 대견스러워 꼬옥 안아줬다. 그 순간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고마워 내 딸 ~ 엄마도 우리딸 사랑해 ~아주 많이 ~ ”
그동안 우리글을 가르치면서 함께 했던 기억들이 영화장면처럼 떠올랐다. 딸애의 우리글로 쓴 축하메세지가 내게는 큰 위로가 되였고 코로나 비상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다.
얼마전 아이는 우리글 숙제를 하면서 말했다.
“엄마, 저는 앞으로 우리글을 열심히 배워서 중한번역관이 되겠어요.”
 “니가 그림을 잘 그려서 미술쪽으로 발전한다면서 목표를 바꾸었어?”
 “번역관이 돈을 더 버니깐요.”
아이는 신나서 말했다.
“돈을 더 잘 버는 일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더 행복하단다. 엄마는 우리딸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는 우리말 덕분에 아이와 관계가 좋아졌고 소통이 더 원활해졌고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말투도 부드러워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진작 더 어렸을때 우리말을 가르칠 걸 그랬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많은 지식을 장악하고 언녕 주말학교를 졸업했을텐데 말이다. 나와 아이사이를 더 돈둑해지게 해준 우리말이 고맙다. 3년만 더 공부를 하면 주말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 이제 곧 사춘기를 맞이할 아이를 인정하고 대견스레 바라보면서 온전히 아이를 잘 키울 자세가 되여있다. 엄마의 성급함을 뒤로 하고 아이앞에서 먼저 달리지 말고 아이의 뒤에 한발 물러서서 잘 커가는 아이 모습을 사랑으로 밀어주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요즘 딸아이가 유난히 좋아 하는 시가 있다.
 
서시
윤동주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딸아이가 이 시를 몇번 읽더니 줄줄 외우면서 랑독을 어찌나 잘하는지 너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시인 윤동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말과 우리글을 잊지 않고 끝까지 지켜 찬란한 문화유산을 세상에 남겼다. 우리 세대, 우리 후세들도 우리말과 우리글 그리고 우리 조선족 문화를 사랑하
그 소신과 명맥이 세상 어딘가에 고스란히 뿌리 내렸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보면서 이 글을 끝낸다.
허해란
 
                 (본작품은 세계조선족 글짓기 대회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26기)응모작품임)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17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17 앞으로 살아갈 당신에게(4) 2024-11-03 0 5
516 이웃 위해 살다가 가버리는 일벌의 삶! 2024-10-29 0 73
515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 2024-10-26 0 292
514 앞으로 살아갈 당신에게(3) 2024-10-21 0 338
513 주옥같은 고전명언(5) 2024-10-19 0 107
512 앞으로 살아갈 당신에게(2) 2024-10-15 0 166
511 앞으로 살아갈 당신에게(1) 2024-10-12 0 209
510 로인의 성(性) 유감(有感) 2024-10-09 0 90
509 주옥같은 고전명언(4) 2024-10-01 0 315
508 “잔소리와 연설은 짧을수록 좋다” 2024-09-28 0 109
507 사흘에 한 번 마시는 술은 “금”이다 2024-09-25 0 189
506 주옥같은 고전명언 (3) 2024-09-19 0 174
505 {력사수기}그 가족이 보고 싶다 2024-09-13 0 169
504 감사한 마음은 겸허한 마음에서 우러난다 2024-09-12 0 134
503 교사절에 떠오르는 백부님의 당부 2024-09-09 0 537
502 주옥같은 고전명언(2) 2024-09-07 0 188
501 “세 개의 문제” 2024-09-01 1 282
500 88년전 올림픽에서 불렸던 조선 응원가(애국가) 2024-08-23 0 246
499 주옥같은 고전명언 2024-08-20 0 306
498 노을 같은 사람들 2024-08-14 0 459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